주사 한 방으로 치매 확률 ↓..백신의 놀라운 효과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발병 확률을 20% 감소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스탠퍼드대 의대 파스칼 겔드세처 교수 연구진은 3일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영국 웨일스 지역에서 머크(MSD)의 대상포진 백신 '조스타박스(Zostavax)'를 접종한 사람들의 치매 발병률이 미접종자보다 20% 낮았다는 연구 결과를 게재했다.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varicella zoster virus) 감염으로 인해 발병하는 신경질환이다. 어릴 때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온몸에 물집이 생기는 수두가 발생하고, 이후 바이러스가 신경세포에 잠복하다가 면역력이 약해지면 다시 활성화되어 대상포진을 유발한다. 대상포진은 극심한 통증을 동반하며 고령층에서 흔하게 발생한다.

 

연구진은 영국 웨일스에서 시행된 대상포진 백신 접종 정책을 활용해 백신이 치매 발병률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웨일스는 2013년부터 1년간 1993년 9월 2일 이후 태어난 사람들을 대상으로 대상포진 백신을 접종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연구 결과, 1925년 9월 1일부터 1942년 9월 1일 사이 출생한 28만2541명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들의 7년 내 치매 발병률은 14%, 미접종자는 17%로 나타났다. 단순 비교 시 백신 접종이 치매 발병률을 20% 낮추는 효과를 보였다.

 

 

 

대상포진 백신의 치매 예방 효과는 이번이 처음 밝혀진 것이 아니다. 2023년 7월 영국 옥스퍼드대, 인간유전학센터, 런던대 공동 연구진도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2017~2020년 대상포진 백신 접종자 10만3837명의 의료 데이터를 분석해 최대 28%의 치매 예방 효과를 확인한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를 예방하는 정확한 원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현재까지의 연구는 의료 데이터를 분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으며, 이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임상시험이 필요하다. 무작위 대조군을 설정해 대상포진 백신과 위약(가짜 약)을 접종한 후 장기적으로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대상포진 백신이 면역력을 높여 치매 예방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추정하고 있다. 수두대상포진바이러스는 신경세포에 잠복해 있다가 면역력이 약해지면 활성화되는데, 이 과정에서 뇌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바이러스 일부가 뇌에 잠복한 뒤 면역력이 약해지면 재활성화되면서 인지 기능 저하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만약 이 가설이 맞다면, 대상포진 백신이 바이러스의 증식을 막아 치매 예방 효과를 낼 수 있다.

 

미국 하버드대 아누팜 지나 교수는 같은 날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평에서 이번 연구를 "대상포진 백신이 치매 위험을 낮춘다는 강력한 증거"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상포진 백신이 신경계에 잠복한 바이러스의 재활성화를 막을 가능성이 있다"면서 "대상포진으로 인한 마약성 진통제 사용을 줄여 뇌 활동을 유지하고, 면역력을 전반적으로 높여 신경 염증을 줄이는 효과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상포진과 치매의 연관성에 대한 연구가 지속되는 가운데, 백신 접종이 단순히 대상포진 예방을 넘어 신경퇴행성 질환 예방에도 기여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향후 대규모 임상시험을 통해 백신의 치매 예방 효과를 보다 구체적으로 입증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